나당연합군

나당연합군은 7세기 중반 신라와 당나라가 결성한 군사 동맹체이다. 당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인해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었으며, 특히 백제 의자왕의 공격으로 대야성을 비롯한 요충지를 잃으며 영토적 손실이 컸다. 이에 김춘추는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뒤 당나라로 건너가 당 태종과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당나라는 수차례에 걸친 고구려 원정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신라를 협력자로 선택했으며, 이를 통해 한반도 내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660년, 나당연합군은 본격적인 백제 정벌에 나섰다.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수군 13만 명과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5만 명은 각각 바다와 육로를 통해 백제를 압박했다. 신라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끄는 백제 결사대를 격파했고, 당군은 금강 하구로 진입하여 백제의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연합군은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켰으며, 결국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내어 백제를 멸망시켰다.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여 해당 지역을 직접 지배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은 이어 고구려 정벌을 추진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장기간 저항했으나, 연개소문 사후 지도층 내부의 권력 다툼과 분열로 인해 국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668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은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포위하여 함락시켰다. 이로써 고구려는 건국 700여 년 만에 멸망하였으며, 나당연합군은 한반도 내의 강력한 경쟁 세력들을 모두 제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전쟁 종료 후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구체화했다.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신라의 영토까지 자국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하려 시도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 및 백제 유민들과 힘을 합쳐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나당전쟁을 시작했다. 신라군은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당의 대군을 차례로 격파하며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 밖으로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하며 삼국통일의 과업을 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