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교는 중국 송나라 시대에 시작되어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며 활동한 민간 종교 결사이다. 12세기 남송의 승려 모자원이 정토교의 일파로 창시하였으며, 초기에는 염불을 수행의 중심으로 삼아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다.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신앙에서 출발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미륵신앙 및 마니교의 요소가 혼합되어 독특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백련교의 핵심 교리는 세상이 곧 종말에 이르고 미륵불이 하생하여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구세주적 신앙이었다. 특히 '무생노모'라는 절대신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이러한 교리는 사회적 불평등과 수탈에 시달리던 하층민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졌으며, 남녀평등과 상부상조를 강조하는 조직 체계는 농민층을 결집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원나라 말기 백련교는 몽골의 지배에 저항하는 반란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러 '홍건적'이라 불렸으며, 백련교도인 유복통 등이 주도한 반란은 원나라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 또한 초기에는 백련교 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나, 집권 후에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백련교를 사교로 규정하고 엄격히 탄압하였다.
청나라 시기 백련교는 정부의 가혹한 수탈과 차별에 맞서 대규모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1796년부터 1804년까지 쓰촨, 후베이, 산시성 일대에서 일어난 '백련교의 난'은 청나라 왕조를 뒤흔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비록 이 반란은 관군과 향신층의 의병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막대한 군비 지출과 팔기군의 무능함이 드러나면서 청나라는 전성기를 지나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백련교는 중국 역사에서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저항 운동으로 변모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단순한 종교 단체를 넘어 비밀 결사적 성격을 띠며 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려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후 등장한 의화단 운동이나 다른 민간 비밀 결사 조직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 전근대사에서 민중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