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裵湖, 1942~1971)는 1960년대 한국 대중가요계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가수다. 본명은 배신웅이며,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서 광복군이었던 아버지 배국민과 어머니 김금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광복 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성장했으나, 1955년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음악가였던 외삼촌 조남사와 김광빈의 영향으로 음악계에 입문한 그는 드럼 연주자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으며, 1963년 '굿바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배호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가 발표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곡은 당시 라디오 방송 차트에서 20주 넘게 1위를 차지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그는 단숨에 당대 최고의 가수 반열에 올랐다. 이어 발표한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당신' 등이 연달아 성공하며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의 목소리는 중저음의 굵고 호소력 짙은 바이브레이션이 특징이었으며, 기존의 트로트와는 차별화된 세련된 도회적 감성을 담아내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음악적으로 배호는 트로트에 재즈와 팝의 요소를 접목하여 한국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단순히 구슬픈 가락을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를 품격 있게 표현해냈다. 당시 그의 인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폭발적이었으며, 그의 패션과 무대 매너는 젊은 층 사이에서도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수많은 모창 가수들이 등장할 정도로 그의 가창법은 한국 가요계에 깊은 인장을 남겼다.
그러나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기에 배호는 신장염이라는 병마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휠체어에 의지하거나 복대를 차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투혼을 발휘했다. 병세가 악화되는 중에도 녹음실을 찾아 '마지막 잎새', '0시의 이별' 등을 남겼으나, 결국 1971년 11월 7일 만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팬이 몰려 눈물로 마지막 길을 배웅했으며, 이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배호 사후에도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여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2003년에는 '한국 가요사상 가장 뛰어난 가수'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서울 삼각지 로터리와 장충단 공원 등에는 그를 기리는 노래비가 세워졌다. 그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되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그의 노래가 리메이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