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朴憲永, 1900년 12월 12일 ~ 1970년 10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한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평양의 숭실학교와 일본 도쿄의 도쿄 대학에서 학업을 이수하였다.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였으며, 1926년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동안 다양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노선의 정치 활동에 참여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북한의 정치적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하며, 최소한의 정치적 지위와 영향력을 가졌다.
1946년, 그는 북한 정부에서 부수상직을 맡고, 1948년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당의 주요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부각되었다. 박헌영은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으며, 김일성과의 관계 속에서 당 내의 권력 투쟁에도 연루되었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이후, 박헌영은 북한의 전선에서 주요 정치 및 군사적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전후 정세 변화 속에서 김일성과의 권력 갈등이 격화되었고, 1953년에는 정치적 수난을 겪게 되어 사실상 정치 무대에서 배제된다.
그는 1956년과 1958년 두 차례에 걸쳐 숙청당했고, 1970년 자진으로 북한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의 행적은 불확실해졌으며, 그는 북한의 역사에서 복잡한 인물로 남아있다. 박헌영은 북한의 초기 사회주의 체제 구축에 기여했으나, 그의 정치적 운명은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