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성(朴昌成, 1896~1924)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황해도 수안 출신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무력 투쟁을 전개했던 의열단(義烈團)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일제의 식민 통치 기구를 파괴하고 주요 요인을 암살함으로써 민족의 독립 의지를 고취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박창성은 중국 베이징에서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그는 단원들과 함께 폭탄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국내외의 일제 주요 기관을 공격하기 위한 거사를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특히 무기를 국내로 반입하는 위험한 임무를 자처하며 항일 전선의 전면에 나섰다.
1923년 박창성은 의열단의 대규모 파괴 공작이었던 이른바 '황옥 경부 폭탄 사건'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는 헝가리인 폭탄 제조 전문가를 통해 제작한 폭탄과 권총 등을 안동현(현 단둥)을 거쳐 국내로 밀반입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계획은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일제의 수탈 기관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거사 실행을 앞두고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몰아치면서 박창성은 경성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직의 비밀을 끝까지 지켰다. 옥중에서도 굴하지 않는 기개를 보였으나, 고문 후유증과 열악한 수감 환경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1924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창성은 자신의 안위보다 민족의 해방을 우선시하며 짧은 생애를 독립운동에 바친 인물로, 그가 보여준 불굴의 투쟁 정신은 이후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위패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