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래(朴昌來, 1885~1947)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천도교인이다.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중심으로 3·1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민족의 자결권과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희경(希卿), 호는 남강(南岡)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885년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천도교에 입교하여 신앙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1910년대 중반부터는 천도교 홍성교구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내 교세 확장과 교인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당시 천도교는 손병희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박창래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준비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박창래는 홍성 지역의 만세 시위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는 천도교 중앙총부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홍성군 내 각지에 배포하였으며, 4월 초 금마면 등지에서 수백 명의 군중을 모아 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특히 그는 단순한 참여를 넘어 시위의 조직화와 선동을 담당하며 홍성 지역 항일 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만세 시위 주동 혐의로 일제 경찰에 체포된 박창래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공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면서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으며, 출옥 후에도 천도교 활동을 이어가며 지역 사회의 계몽과 민족정신 수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