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근(독립운동가)

박창근(朴昌根)은 구한말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강원도 일대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76년(고종 13)에 태어났으며, 본관이나 구체적인 생애 초기에 대한 기록은 미비하나 강원도 원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내정 간섭을 심화하던 시기에 구국 항쟁의 대열에 합류하여 목숨을 바쳤다.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이에 반발한 원주 진위대 특무정교 민긍호(閔肯鎬)가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박창근은 민긍호가 이끄는 의병진에 가담하여 대일 항전에 나섰다. 민긍호 의병 부대는 당시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의병진 중 하나였으며, 충청북도 북부와 경기도 동부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활발한 유격전을 펼쳤다.

박창근은 의병부대의 일원으로서 동료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 횡성, 홍천, 춘천 등지의 산악 지형을 이용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다수의 전투에 참여했다. 특히 이들은 험준한 지형을 활용한 매복과 기습 작전을 통해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과 헌병대에 타격을 입혔으며, 친일 주구배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수행하며 항일 의식을 고취했다.

치열한 항쟁을 이어가던 중, 박창근은 1908년(융희 2) 3월 강원도 원주군 부론면(현 원주시 부론면) 일대에서 일본 경찰대와 조우하여 교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는 일본군의 화력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교전 도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직후 그는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창근의 이러한 구국 헌신과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활동은 정미의병 당시 강원도 지역 의병들의 끈질긴 저항 정신과 희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현재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