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국(독립운동가)

박제국(朴齊國, 1886~1953)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당시, 안성군 양성면과 원곡면 일대에서 전개된 격렬한 항일 시위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시위는 당시 일제의 통치 기관을 완전히 무력화하며 '2일간의 해방'이라 불리는 성과를 거둔 안성 지역 독립운동의 핵심적인 사건이었다.

1919년 4월 1일 저녁, 박제국은 원곡면 외가천리에 모인 수천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양성면과 원곡면을 잇는 고개에서 양측 군중이 합류하며 그 세력이 더욱 거대해졌으며, 박제국은 이 대열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이들은 단순한 만세 제창에 그치지 않고 일제의 식민 통치 기구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박제국을 포함한 시위대는 양성 경찰관 주재소에 도착하여 투석을 시작으로 건물을 파괴하고 방화하였다. 이어 양성면사무소와 우편소 등을 습격하여 서류를 파기하고 건물을 손상시켰으며, 일본인이 운영하던 상점과 거주지를 공격하여 일제의 통치 기반을 타격하였다. 이러한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안성 일대의 일본 공무원과 경찰들이 피신하였고, 해당 지역은 일시적으로 일제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해방 구역이 되었다.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이 시작되면서 박제국은 체포되었다. 그는 이른바 소요, 보안법 위반, 방화 및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1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 등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는 독립 의지를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제국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그의 활동은 안성 지역의 항일 투쟁이 지닌 폭발력과 조직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 지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