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조(朴鼎祚, 1880~?)는 일제강점기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성천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20세기 초 하와이를 거쳐 미국 본토로 이주하여 한인 사회의 결성과 독립운동 지원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특히 미주 한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조직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박정조는 19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된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사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미주 한인들은 어려운 노동 환경 속에서도 국권 회복을 위한 열망이 강했으며, 박정조는 리버사이드 등지에서 한인들의 단결을 도모하였다. 그는 동포들의 생활 안정과 교육에 힘쓰는 한편, 항일 정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1909년 공립협회가 다른 한인 단체들과 통합되어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가 결성되자, 박정조는 이 조직의 주요 간부로서 헌신하였다. 그는 대한인국민회 리버사이드 지방회와 샌프란시스코 지방회에서 서기, 재무, 회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하며 행정과 실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기관지인 『신한민보』의 운영을 지원하고 배포함으로써 미주 동포들에게 국내외 정세를 알리고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홍보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미주 지역에서 임시정부를 후원하기 위한 자금 모집 활동에 전력하였다. 그는 인구세와 특별 의연금을 성실히 납부하였으며, 한인 사회 내부의 모금 운동을 주도하여 임시정부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그의 헌신은 미주 한인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박정조의 생애는 이국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면서도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잊지 않았던 전형적인 미주 한인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단합과 국가의 회복을 우선시하였으며, 그의 활동은 미주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