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화(朴命和, 1903~1947)는 일제강점기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청년 시절부터 식민지 현실에 눈을 뜨고 조국의 독립과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에 투신하였다. 그는 주로 청년 운동과 노동 운동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며 일제의 식민 통치 체제에 저항하였다.
1920년대 중반, 박명화는 서울에서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 만세운동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당시 그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의 중앙 간부로서 학생들의 만세 시위를 조직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등 거사의 실질적인 준비와 실행 과정을 주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석방 이후에도 그는 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 참여하였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등에 연루되어 다시 구금되는 등 여러 차례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면서도,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항일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비밀 결사 활동을 통해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을 피해 가며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와 민주주의민족전선 등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힘썼으나, 해방 정국의 극심한 좌우 대립과 혼란 속에서 1947년 생을 마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생애는 일제 치하라는 엄혹한 환경 속에서 민족 해방과 사회 정의를 동시에 실현하고자 했던 지식인이자 실천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