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웅(1906~1948)은 일제강점기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계열의 정치가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생으로, 어린 시절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독립운동 노선을 추구하며 항일 전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26년 중국 황포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입학하여 군사 지식과 혁명 이론을 습득했다. 졸업 후 의열단에 가입하여 김원봉 등과 함께 활동하며 무력 항쟁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창당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 및 서기국장을 역임하며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과 조직화에 힘썼다. 그는 특히 선전과 이론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독립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기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1940년대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법무부 위원, 내무부 차장 등을 지냈으며, 1944년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 단결을 강조했으며,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의 통합 및 운영 과정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국제 정세에 밝아 외교적인 방면에서도 임시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활동을 펼쳤다.
1945년 광복 이후 귀국하여 민족자주연맹의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 협상을 통한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48년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는 좌우 이념 대립의 혼란 속에서 민족의 단결을 우선시했던 인물로 평가받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