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어리 버로우즈(Mary Burroughs, 1894~1964)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파견된 선교사로,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걸쳐 한국의 교육과 선교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녀는 1921년 한국에 입국하여 주로 전라남도 목포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였으며, 한국 이름으로는 부마리아(傅瑪利亞)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녀의 활동은 근대 여성 교육의 보급과 기독교 정신의 전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버로우즈는 목포 정명여학교(현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의 제4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학교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였다. 당시 여성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았던 상황에서 그녀는 여성들에게 근대적 지식과 자립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의 지도 아래 정명여학교는 호남 지역의 주요 여성 교육 기관으로 성장하였으며, 많은 여성 인재를 배출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0년대 후반, 일제는 기독교 학교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탄압을 가하였다. 버로우즈는 기독교 신앙과 양심을 근거로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하였으며,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신앙을 저버리기보다는 학교의 문을 닫는 길을 선택하였다. 이에 따라 1937년 정명여학교는 자진 폐교되었고, 버로우즈는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어 1940년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해방 이후 버로우즈는 1946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선교 및 교육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녀는 6.25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한국 땅을 떠나지 않고 구호 활동과 교육 재건에 힘썼다. 전쟁으로 파괴된 시설들을 복구하고 전쟁고아와 빈민들을 돌보는 등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녀는 한국인들과 함께 고난을 겪으며 복음 전파와 사회 안정을 위해 생애를 바쳤다.
메어리 버로우즈는 1964년 미국에서 별세하였으나, 그녀가 한국에서 실천한 헌신과 신앙적 절개는 한국 기독교사와 교육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특히 목포 지역 사회와 정명학원에서는 그녀를 근대 교육의 선구자이자 신앙의 수호자로 기리고 있다. 그녀의 삶은 제국주의의 탄압에 맞선 저항 정신과 타국인을 향한 이타적 사랑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