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비란기(梅扉欄記)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 저술한 산문집이다. 책의 제목에서 '메비(梅扉)'는 매화나무로 만든 사립문을, '란(欄)'은 난간을 의미하는데, 이는 작가가 자신의 서재나 거처에서 느낀 정취와 예술적 사유를 기록했음을 시사한다.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서 중인 계급을 대표하는 예술가였으며, 이 책은 그의 독특한 미의식과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이 저술의 구체적인 작성 시기는 조희룡이 전라도 임자도로 유배를 갔던 시기나 그 이후인 만년으로 추정된다. 메비란기는 일정한 체계를 갖춘 논저라기보다 평소 작가가 가졌던 생각이나 예술적 감상을 자유롭게 기술한 수필 혹은 유필(遺筆)의 성격을 띤다. 조희룡은 이 책을 통해 매화와 난초에 대한 지극한 사랑, 차(茶)를 즐기는 풍류, 그리고 서화의 격조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내용의 핵심은 예술적 몰입과 '벽(癖)'의 문화에 있다. 조희룡은 스스로를 매화에 미친 사람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매화에 집착했으며, 메비란기 곳곳에는 매화를 그리고 감상하는 법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인 묘사가 등장한다. 그는 예술이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 흥취와 정신을 표현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특히 난초를 치거나 글씨를 쓰는 데 있어 격식보다는 천부적인 재능과 자유로운 운필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문학사적 측면에서 메비란기는 19세기 조선의 여항(閭巷) 문화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당시 중인 출신 예술가들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문인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전문적이고 탐미적인 경향을 발전시켰다. 조희룡은 이 책에서 골동품 수집이나 서화 감평 등 당대 도시 지식인들의 세련된 취미 생활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19세기 예술계의 풍토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메비란기에 나타난 조희룡의 문장은 화려하고 비유가 풍부하며,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이 돋보인다. 그는 일상의 소소한 사물이나 자연 현상에서 우주적 원리와 예술적 영감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또 다른 저작인 『호산외사』와 함께 조희룡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 오늘날 이 책은 조선 후기 회화사와 문학사를 연결하는 귀중한 텍스트로 연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