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B. 리지웨이

매튜 번커 리지웨이(Matthew Bunker Ridgway, 1895~1993)는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에서 활약한 미국의 육군 장성이다. 그는 위기 상황에 처한 부대를 재정비하여 승리로 이끄는 탁월한 지휘 능력을 발휘했으며, 특히 6.25 전쟁 당시 패배주의에 빠진 유엔군을 재건하여 전세를 역전시킨 인물로 높게 평가받는다. 1917년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한 이후 평생을 군인으로 헌신하며 미국 육군 참모총장까지 역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리지웨이는 공수부대의 개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제82공수사단을 지휘하며 시칠리아 침공과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직접 낙하산 강하를 감행하며 전투를 이끌었다. 이후 제18공수군단장으로 승진하여 마켓 가든 작전과 벌지 전투 등 유럽 전선의 주요 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지휘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전방에서 병사들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월튼 워커 장군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리지웨이는 미 제8군 사령관으로 긴급 임명되었다. 당시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과 대규모 공세로 인해 후퇴를 거듭하며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상태였다. 리지웨이는 부임 직후 철저한 보급선 확보와 화력 우위를 활용한 전술을 도입하여 부대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는 '킬러 작전'과 '리퍼 작전' 등을 전개하여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서울을 재탈환하는 등 전선을 현재의 휴전선 인근까지 밀어 올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951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해임된 후, 리지웨이는 유엔군 총사령관 겸 연합군 최고사령관직을 승계했다. 그는 군사적 작전뿐만 아니라 공산 측과의 정전 협상 초기 단계를 관리하며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후 1952년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뒤를 이어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SACEUR)으로 임명되었으며, 1953년에는 미국 육군 참모총장에 올라 군의 현대화와 전략 수립에 힘썼다. 특히 육군 참모총장 재임 시절에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핵무기 위주 국방 정책에 맞서 재래식 군사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리지웨이는 야전에서 가슴에 수류탄과 구급함 뭉치를 매단 특유의 군장 차림으로 '수류탄 장군'이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이는 현장 중심의 지휘 철학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남았다. 1993년 98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능한 야전 사령관 중 한 명으로 존경받았다. 한국 내에서는 6.25 전쟁의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꾼 '구국의 장군'으로 기억되며, 그의 공로를 기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훈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