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아장(望牙莊)은 고려 시대와 조선 초기에 걸쳐 존재했던 특수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송동과 기장군 일대에 위치했던 지역이다. 고려 시대의 행정 체계는 주현과 속현 외에도 향(鄕), 소(所), 부곡(部曲), 장(莊), 처(處)와 같은 특수 행정 단위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망아장은 그중 '장'에 해당하는 구역이었다. 이곳은 국가 기관이나 왕실, 혹은 특정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봉헌하거나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설정된 지역이었다.
망아장의 지리적 특성은 해안가에 인접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위치적 이점으로 인해 망아장은 고대부터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나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업이 발달했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국가의 공물 체계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으며, 생산된 물자는 수로와 육로를 통해 인근의 동래현(東萊縣)으로 집결된 뒤 중앙으로 운송되었다.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형이 상아(象牙)를 닮았거나 해안의 돌출된 부분을 바라보는 형세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망아장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일반 양민과는 구별되는 사회적 처우를 받았다. 이들은 노비와 같은 천민 신분은 아니었으나,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엄격히 제한되었고 국역(國役)의 부담이 일반 군현의 주민들보다 훨씬 무거웠다. 이들은 주로 세습적으로 해당 지역의 생산 활동에 종사하며 국가 재정 보충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러한 특수 행정 구역의 존재는 고려 시대 사회의 계층 구조와 경제 체제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행정 체계의 중앙 집권화가 강화됨에 따라 망아장은 점차 변화를 맞이했다. 조선 초 세종 대를 전후하여 향, 소, 부곡 등의 특수 구역을 폐지하고 일반 면(面)이나 리(里)로 편입하는 정책이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망아장 역시 독자적인 단위로서의 성격을 점차 잃고 동래현의 하부 행정 구역으로 흡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같은 지리지 기록에는 망아장이 동래의 속지로 언급되며, 당시의 토지 면적과 공물 품목 등이 기록되어 있어 과거의 위상을 짐작게 한다.
오늘날 망아장이라는 행정 명칭은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으나, 부산 지역의 향토사 연구에서 망아장은 해운대와 기장 지역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다. 비록 도시화 과정에서 당시의 구체적인 경계나 염전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재송동 일대의 옛 지명과 관련된 기록 속에 그 흔적이 보존되어 있다. 망아장에 대한 기록은 한국 중세의 지방 통치 방식과 해안 지역 민중들의 생활사를 복원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