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1824~1880)는 러시아 제국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다. 본명은 막시밀리아네 빌헬미네 아우구스테 조피 마리로, 헤센대공국의 대공 루트비히 2세와 빌헬미네 대공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841년 당시 러시아의 황태자였던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와 결혼하며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고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녀의 출생에 대해서는 생부가 루트비히 2세가 아닌 대공비의 시종무관인 세나르클랑 드 그랑시 남작이라는 소문이 지배적이었다. 이로 인해 혼담 초기에는 러시아 황실 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알렉산드르 2세가 그녀와의 결혼을 강력히 고집했다. 결국 시아버지인 니콜라이 1세의 허락을 받아 결혼이 성사되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서는 6남 2녀가 태어났다. 그중 차남인 알렉산드르 3세가 훗날 러시아의 황제가 되었다.

황후로서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자선 사업과 교육 분야에 헌신했다. 그녀는 러시아 적십자사를 창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여성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러시아 전역에 여학교 체계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어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문화적인 후원자 역할을 수행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마린스키 극장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본래 허약한 체질이었던 데다 잦은 출산과 러시아의 추운 기후로 인해 만성적인 폐질환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알렉산드르 2세가 예카테리나 돌고루코바와 오랜 기간 외도를 이어가며 공공연히 두 번째 가정을 꾸린 것은 그녀에게 큰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1865년에는 장남이자 후계자였던 니콜라이 대공이 병사하면서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1880년 6월 3일, 폐결핵으로 인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에서 사망했다. 그녀가 사망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알렉산드르 2세가 정부였던 돌고루코바와 비밀리에 결혼을 강행하면서 황실 내부의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그녀는 생전의 신실하고 품격 있는 태도로 러시아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베드로-바울 성당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