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Maria di Sicilia, 1363~1401)는 14세기 시칠리아 왕국의 여왕이자 아테네 및 네오파트리아의 공작부인이었다. 시칠리아의 국왕 페데리코 3세와 아라곤의 콘스탄차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1377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14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녀는 바르셀로나 가문의 시칠리아 지계를 잇는 마지막 정통 군주로서, 시칠리아의 주권과 후계 구도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분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마리아의 재위 초기 시칠리아 왕국은 강력한 귀족 가문들의 세력 다툼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알라고나, 키아라몬테, 벤티밀리아, 페랄타 가문으로 대표되는 네 명의 집정관이 왕국을 분할 통치하며 여왕의 권위를 제한하였다. 특히 알라고나 가문의 아르탈레 알라고나는 여왕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카타니아의 우르시노 성에 감금하는 등 사실상 포로와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하며 실권을 행사하였다.
1379년 마리아는 아라곤 왕국의 지원을 받은 굴리엘모 라이몬도 몬카다에 의해 성에서 구출되었다. 이후 그녀는 사르디니아를 거쳐 아라곤 왕국으로 압송되었으며, 그곳에서 국왕 페드로 4세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1390년 마리아는 페드로 4세의 손자인 마르티노 1세와 결혼하였다. 이 혼인은 시칠리아에 대한 아라곤 왕가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두 왕국을 통합하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추진된 정략결혼이었다.
1392년 마리아와 마르티노 1세는 아라곤의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시칠리아로 돌아와 반대파 귀족 세력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메시나를 비롯한 주요 거점들을 탈환하며 왕권을 회복하였고, 이후 1401년까지 공동 국왕으로서 시칠리아를 통치하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시칠리아는 독자적인 왕조의 성격보다는 아라곤 왕관령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가 강화되었다.
마리아는 1401년 외아들인 피에트로를 잃은 직후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으로 시칠리아의 바르셀로나 가문 직계 계보는 완전히 단절되었으며, 시칠리아의 왕위는 남편인 마르티노 1세에게 독점적으로 계승되었다. 그녀의 재위는 시칠리아가 독립적인 왕국에서 아라곤 왕국의 속령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하며, 마리아는 중세 말기 유럽의 복잡한 왕위 계승 전쟁과 영토 분쟁의 역사적 맥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