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기원전 115년경 ~ 기원전 53년)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 및 군사 지도자로, 정치적 영향력과 재력으로 알려져 있다. 크라수스는 부유한 상인이자 노예를 대대적으로 소유한 자로, 그의 재산은 로마에서 가장 방대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펠리프(Felix) 지방의 부유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경력은 로마 공화국의 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First Triumvirate)를 형성하여 정치적 권력을 공유하였다. 그는 전쟁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기원전 71년의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진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를 통해 그는 군사적 명성을 쌓았고, 인민들 사이에서 정치적 자산을 확장하였다.
그의 정치 경력 동안 크라수스는 여러 공직을 맡았으며, 기원전 55년에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야망은 종종 경쟁자들과의 갈등을 초래하였다. 그는 군사적 업적을 쌓기 위해 동쪽으로 진출하려 했고, 기원전 53년에는 파르티아 제국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죽음은 로마에서의 권력의 균형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크라수스는 단순히 부유한 자로 기억되지 않으며, 그의 정치적, 군사적 활동은 로마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삶과 경력은 고대 로마의 권력 구조와 정치적 갈등의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