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엉니으홋

르엉니으홋(Lương Nhữ Hốt, 梁汝笏)은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 베트남의 호 왕조와 명나라 점령기, 그리고 후 레 왕조의 건국 시기에 걸쳐 활동한 정치가이자 장군이다. 그는 쩐 왕조 말기에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이후 호 꾸이 리가 세운 호 왕조에서 고위 관료를 지냈다. 그러나 베트남 역사에서 그는 주로 외세인 명나라에 협력한 대표적인 부역자로 기록되어 있다.

호 왕조 시기에 르엉니으홋은 안남의 국방과 행정 업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407년 명나라 영락제가 대월을 침공하여 호 왕조를 멸망시켰을 때, 그는 저항을 포기하고 명나라에 투항했다. 명나라는 베트남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교지포정사사(交趾布政使司)를 설치했는데, 르엉니으홋은 이곳의 고위직을 맡아 명나라의 현지 지배를 돕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명나라 점령기 동안 르엉니으홋은 타인호아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되어 자국의 저항 세력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명나라 군대를 도와 현지 지형과 사정을 보고하고, 세금 징수와 강제 노동 동원을 주도하며 명나라의 식민 통치를 공고히 했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그는 동포들로부터 민족의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명나라로부터는 충성심을 인정받아 지속적인 신임을 얻었다.

1418년 레 러이(Lê Lợi)가 람선 봉기를 일으켜 독립 전쟁을 시작하자, 르엉니으홋은 명나라 군대를 이끌고 봉기군을 토벌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는 람선 봉기군의 근거지인 타인호아 지역을 잘 알고 있었기에 레 러이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적수였다. 그는 여러 차례 봉기군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명나라와 협력하여 베트남의 독립 의지를 꺾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1427년 치랑-쑤엉장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가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되자 그의 권력도 종말을 맞이했다. 레 러이가 하노이를 탈환하고 후 레 왕조를 건국한 후, 르엉니으홋은 반역죄로 체포되었다. 그는 민족을 배반하고 외세에 협력하여 동포를 탄압한 죄목으로 결국 처형되었다. 오늘날 베트남 역사학계에서 그는 기회주의적 부역자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