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일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며, 5세기의 18번째 해이다. 한국사에서는 고구려 장수왕 6년, 백제 전지왕 14년, 신라 눌지 마립간 2년에 해당한다. 중국은 동진(東晉)의 의희(義熙) 14년, 북위(北魏)의 태상(泰常) 3년이었으며, 유럽은 서로마 제국의 쇠퇴와 게르만족의 정착이 가속화되던 시기였다.
한반도 역사, 특히 신라사에서 418년은 박제상의 충절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 기록된 해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이 해에 눌지 마립간의 동생인 미사흔이 왜(일본)에서 탈출하여 귀국했다. 앞서 박제상은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또 다른 왕제 복호를 구출한 뒤, 418년에는 왜로 건너가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붙잡혀 처형당했다. 이 사건은 신라 왕실의 통합을 강화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백제의 전지왕은 이 해에 중국 동진에 사신을 보내며 외교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중국사에서는 동진 왕조의 멸망이 목전에 닥친 시기였다. 동진의 실권자였던 유유(훗날의 송 무제)는 418년 말에 안제(安帝)를 살해하고 그의 동생인 공제(恭帝)를 옹립했다. 이는 유유가 제위를 찬탈하기 위한 수순이었으며, 사실상 동진 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남북조 시대의 남조인 유송(劉宋)이 건국되기 직전의 정치적 격변기였다. 북위는 명원제 치세 하에 북방을 안정시키며 남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유럽 역사에서 418년은 서고트 왕국의 건국과 관련된 기념비적인 해이다. 서고트족의 왕 왈리아는 서로마 제국 황제 호노리우스와의 협정을 통해 갈리아 남서부의 아키텐 지방(톨루즈)에 정착할 권리를 획득했다. 이를 통해 톨루즈를 수도로 하는 서고트 왕국이 공식적으로 성립되었다. 이는 로마 제국 영토 내에 게르만족이 합법적인 독립 국가를 건설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중세 유럽의 지정학적 지도가 변화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418년은 교리 논쟁과 교황권 분쟁이 일어난 중요한 해이다. 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열린 공의회(카르타고 공의회)에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한 펠라기우스주의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은총론을 정통 교리로 재확인했다. 또한, 교황 조시모가 사망한 후 보니파시오 1세와 에울랄리우스가 서로 교황임을 주장하며 대립하는 분열 사태가 발생하여 로마 교회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