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사나(Roxana, 기원전 340년경 ~ 기원전 310년)는 고대 박트리아의 귀족 출신으로, 마케도니아 제국의 국왕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첫 번째 왕비이다. 그녀의 이름은 고대 이란어군에서 '빛나는' 또는 '아름다운 별'을 의미하는 '로샹(Roshan)'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트리아의 영주였던 옥시아르테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격동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만남은 기원전 327년, 알렉산드로스가 소그디아나 암벽 요새를 함락시킨 직후에 이루어졌다. 당시 록사나는 포로의 신분이었으나, 그녀의 미모에 매료된 알렉산드로스는 관례적인 후궁의 지위가 아닌 정식 결혼을 선택하였다. 이 결혼은 개인적인 애정뿐만 아니라, 정복지인 동방 귀족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현지 민심을 수습하려는 알렉산드로스의 '동서 융합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결혼 이후 록사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원정길에 동행하며 제국의 왕비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인 상태였다. 사후 전개된 권력 투쟁 속에서 그녀는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를 출산하였으나, 제국의 정통 후계자를 둔 장군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그녀의 처지는 매우 위태로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들의 권리를 위협할 수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다른 부인 스타테이라 2세를 살해하는 등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였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전개된 디아도코이(후계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록사나와 그녀의 아들은 여러 세력의 정치적 볼모로 전락하였다. 처음에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의 보호를 받으며 마케도니아 본토로 이동하였으나, 기원전 316년 카산드로스가 올림피아스를 처형하고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녀의 운명은 급격히 몰락했다. 록사나와 알렉산드로스 4세는 암피폴리스 성에 감금되어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수년간 지내야 했다.
결국 기원전 310년경, 자신의 왕권을 확고히 다지려던 카산드로스는 암피폴리스의 총독에게 명령하여 록사나와 알렉산드로스 4세를 독살하였다. 이로써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직계 혈통은 완전히 끊기게 되었으며, 제국은 여러 개의 헬레니즘 왕국으로 분열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록사나는 거대한 제국의 정복자와 결혼하여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시대의 비극과 권력의 냉혹함 속에서 짧고 고단한 생을 마감한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