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리우스 1세

로타리우스 1세(795년~855년)는 카롤링거 왕조의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경건왕 루도비쿠스 1세와 히스파니아의 에르망가르드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샤를마뉴의 손자이다. 그는 바이에른의 국왕, 이탈리아의 국왕을 거쳐 부왕과 공동 황제로 재위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베르됭 조약을 통해 분할된 중프랑크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

817년 루도비쿠스 1세가 발표한 '제국 계획령(Ordinatio Imperii)'에 따라 로타리우스는 제국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루도비쿠스 1세가 재혼하여 얻은 아들 대머리왕 카를에게 영토를 분할해 주려 시도하자, 로타리우스는 자신의 상속권을 지키기 위해 동생들인 루도비쿠스 2세, 피피누스 1세와 결탁하여 부왕에 대항하는 반란을 수차례 일으켰다. 이로 인해 카롤링거 제국은 장기간의 내전과 정치적 혼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840년 부왕이 사망한 후, 로타리우스 1세는 제국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며 형제들과 다시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841년 퐁트누아 전투에서 동생들에게 패배하였고,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을 체결하며 제국의 분할을 수용했다. 이 조약으로 로타리우스 1세는 황제의 칭호를 유지하면서 이탈리아 반도와 라인강 서부 유역, 저지대 국가들을 포함하는 중프랑크 왕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가 차지한 영토는 북해에서 지중해까지 이어진 길쭉한 형태의 완충 지대였다.

로타리우스 1세는 통치 말기에 건강이 악화되자 855년 프륌 조약을 통해 자신의 영토를 다시 세 아들에게 분할 상속하였다. 장남 루도비쿠스 2세에게는 이탈리아와 황제 칭호를, 차남 로타리우스 2세에게는 로타링기아를, 삼남 샤를에게는 프로방스와 부르고뉴를 물려주었다. 영토 분할을 마친 그는 황제위에서 물러나 수도원에 입성하였으며, 그해 9월 프륌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사후 중프랑크 왕국은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며 서프랑크와 동프랑크 사이의 영토 분쟁지가 되었다. 로타리우스 1세의 통치기는 샤를마뉴가 이룩한 통일 프랑크 제국이 해체되고, 현대 유럽 국가들의 원형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틀이 마련되는 결정적인 과도기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가 다스렸던 중프랑크의 북부 지역은 그의 아들 로타리우스 2세의 이름을 따서 '로타링기아(현재의 로렌)'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