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이 연출한 1997년 영화 '로리타'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이 작품은 중년의 문학 교수인 험버트 험버트가 어린 소녀 돌로레스 헤이즈(로리타)에게 느끼는 병적인 집착과 그로 인한 파멸의 과정을 담고 있다. 1962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가 검열로 인해 원작의 설정을 대폭 수정하고 암시적으로 표현했던 것과 달리, 1997년판은 원작 소설의 탐미적이고 비도덕적인 분위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데 주력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유럽 출신의 교수 험버트가 미국 뉴잉글랜드의 하즈 부인 집에 하숙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하즈 부인의 딸인 12세 소녀 로리타에게 첫눈에 매료되고, 그녀의 곁에 머물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하즈 부인과 결혼한다. 아내가 사고로 사망한 후 험버트는 로리타를 데리고 미국 전역을 떠도는 장기 여행을 시작하며 자신들만의 고립된 세계를 구축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험버트의 강박적인 소유욕과 통제는 로리타와의 관계를 비극으로 몰아넣으며, 또 다른 인물인 클레어 퀼티의 등장은 상황을 더욱 복잡한 파국으로 이끈다.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 역을 맡은 제레미 아이언스는 지적이면서도 광기 어린 집착에 사로잡힌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하여 호평을 받았다. 로리타 역의 도미니크 스웨인은 순진함과 영악함이 공존하는 사춘기 소녀의 이미지를 탁월하게 소화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엔니오 모리코네가 담당한 영화 음악은 애절하고 서정적인 선율로 영화의 탐미주의적 색채를 극대화했으며, 1950년대 미국의 풍경을 담아낸 유려한 촬영 기법은 비극적인 서사와 대조를 이루며 시각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부터 소아성애라는 파격적이고 금기시되는 소재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논란과 검열 문제에 직면했다. 미국 내에서는 배급사를 찾는 데 난항을 겪어 제작 후 1년이 지나서야 개봉할 수 있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상영이 금지되거나 상당 부분이 삭제되기도 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범죄적 행위를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했다는 비판과,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고독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찬사가 팽팽하게 맞섰다.
1997년판 '로리타'는 원작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인 험버트의 자기 정당화적 서술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도, 그 속에 가려진 로리타의 상처와 소외를 암시하며 문학적 뉘앙스를 살리려 노력한 작품이다. 영화는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덕적 경계에 선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