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과 6호체>는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된 작가 이상의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상의 독창적인 문학적 실험 정신이 잘 드러난 작품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소설의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파편화된 심리 묘사와 기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제목에 등장하는 '렌'은 화자의 관찰 대상이자 관계의 중심에 놓인 인물이며, '6호체'는 당시 인쇄소에서 흔히 사용하던 활자의 크기를 지칭한다. 작가는 활자와 활자판이라는 구체적이고 기계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관계나 자아의 존재를 규격화된 틀 안에서 조명한다. 이는 근대적 일상의 건조함과 그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치로 해석된다.
작품의 서술 방식은 극히 자의적이며 비논리적인 전개를 취한다. 화자는 렌이라는 인물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의식 과잉 상태에 머물며 내면의 분열을 겪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보다는 의식의 흐름에 따른 단절된 문구들을 배치함으로써 독자에게 불안과 혼란의 정서를 전달한다. 이러한 전위적인 시도는 당대 한국 문단에서 매우 파격적인 경제를 보여주었다.
소설 내에서 화자와 렌의 관계는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한 허무주의적 색채를 띤다. 둘 사이의 대화나 행위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근대 도시인이 겪는 고독과 존재의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특히 감정의 교류나 인간적인 유대마저도 무미건조한 활자의 나열처럼 차갑게 묘사되는 점이 이 작품의 주요한 특징이다.
<렌과 6호체>는 이상의 다른 대표작인 <날개>나 <오감도>와 맥을 같이 하면서도, 인쇄 매체와 활자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이상이 가졌던 건축사로서의 기술적 감각과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언어의 실험적 파괴와 재구성을 통해 현대적 불안을 가장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