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울 해군항공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 뉴브리튼섬의 라바울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일본 제국 해군의 항공 부대들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라바울은 지형적 이점과 천혜의 항구 조건을 갖추고 있어 일본군의 남방 전선 진출을 위한 핵심 전략 기지로 활용되었다. 이곳에는 제25항공전대와 제26항공전대 등 다수의 정예 항공 부대가 주둔하며 솔로몬 제도와 뉴기니 방면의 항공 작전을 주도했다.
1942년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되면서 라바울 해군항공대는 전쟁의 전면에 나섰다. 라바울에서 과달카날까지의 거리는 왕복 약 2,000km에 달하는 장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조종사들은 영식 함상 전투기(제로센)와 1식 육상 공격기를 동원하여 연합군 공군 및 해군을 공격했다. 이 시기 라바울은 일본 해군 항공력의 상징이자 연합군에게는 남태평양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새로 인식되었다.
라바울 해군항공대에는 사카이 사부로, 니시자와 히로요시, 이와모토 테츠조 등 일본 해군을 대표하는 이른바 '에이스' 조종사들이 다수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뛰어난 비행 기술과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 초기 공중전에서 연합군을 압도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연합군의 항공 기술과 전술이 발전함에 따라, 숙련된 조종사들의 계속되는 손실은 일본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1943년 이후 연합군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라바울 해군항공대는 극심한 소모전에 직면했다. 연합군은 '수레바퀴 작전(Operation Cartwheel)'을 통해 라바울을 직접 점령하는 대신, 주변 섬들을 장악하여 라바울을 완전히 고립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지속적인 공습으로 인해 활주로와 정비 시설이 파괴되었고,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항공기 가동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일본군은 1944년 초 남은 항공 전력을 트럭 섬 등으로 철수시킬 수밖에 없었다.
항공기가 떠난 후에도 라바울에는 약 10만 명의 지상군과 해군 육전대가 남아 종전 시까지 요새를 유지했으나, 항공 지원 없는 고립된 기지는 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상태였다. 라바울 해군항공대의 궤멸은 일본 제국 해군이 남태평양의 제권권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의미했다. 이 부대의 역사는 근대 항공전에서 소모전이 조종사 수급 및 보급 체계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