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리역(東稼里驛)은 경원선의 철도역으로, 과거 강원도 철원군 어운면(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강원도 세포군)에 위치해 있었다. 이 역은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중간 기착지 중 하나였으며, 한반도 중부 지역의 물류와 여객 수송을 담당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역명인 '동가리'는 인근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농사가 잘되는 동쪽의 들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역은 1913년 7월 10일 경원선의 철원역과 복계역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영업을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철원 일대는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한 농업 요충지였으므로, 동가리역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수송하는 화물역으로서의 기능과 인근 주민들의 이동을 돕는 여객역으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당시 경원선은 한반도의 동서와 남북을 잇는 핵심 간선 철도였기에 동가리역 역시 그 흐름의 한 축을 담당했다.
동가리역의 지리적 위치는 남쪽의 월정리역과 북쪽의 가곡역 사이에 해당한다. 해방 직후인 1945년에는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분단되면서 소군정 관할인 북한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며 치열한 격전지가 되었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역 건물과 주변 철도 시설물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전쟁 이후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이 확정되면서 동가리역은 북방한계선 안쪽인 북한 강원도 세포군 지역에 위치하게 되었다. 현재 남한 측의 경원선 종착역인 백마고지역이나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월정리역보다 더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남측에서는 물리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과거 철길이 지나던 자리에는 수풀이 우거졌으며 역사의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가리역은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경원선 복원 논의가 이루어질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지점이지만, 남북 관계의 경색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실제 복원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 역은 끊어진 철길 위에서 과거의 번영과 현재의 단절을 동시에 증언하는 역사적 유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