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오잉(道膺, ? ~ 902)은 중국 당나라 말기에 활동한 선종(禪宗) 승려로, 조동종(曹洞宗)의 기틀을 다진 핵심 인물이다. 흔히 그가 머물렀던 산의 이름을 따서 운거도응(雲居道膺)이라고 불린다. 속성은 왕(王)씨이며, 허베이성(河北省) 옥전(玉田) 출신이다. 조동종의 개산조사인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을 이었으며, 후대 선종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승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한 후, 구도심을 품고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교학과 선을 익혔다. 초기에 여러 선사들을 참구하며 수행의 깊이를 더하던 중, 마침내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었던 동산양개를 만나 그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산양개는 다오잉의 비범한 자질과 깨달음의 깊이를 단번에 알아보고 그를 인가(印可)하여 자신의 주요 법맥을 잇게 하였다. 이로써 다오잉은 청원행사(靑原行思)에서 석두희천(石頭希遷)으로 이어지는 남종선(南宗禪)의 정통 계보를 잇는 주역이 되었다.
스승의 곁을 떠난 다오잉은 강서성(江西省)의 운거산(雲居山)에 들어가 진여사(眞如寺)를 세우고 독자적인 선풍(禪風)을 크게 떨쳤다. 그의 가르침은 매우 엄격하고 철저했으며, 두타행(頭陀行)을 바탕으로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묵묵히 참선하는 수행 방식을 강조했다. 다오잉의 명성이 천하에 알려지자 그에게 가르침을 구하려는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전성기에는 운거산에 머무는 대중이 1,500명을 넘을 정도로 거대한 수행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는 조동종의 핵심 사상인 오위설(五位說)을 바탕으로 학인들을 치밀하게 지도하며 종파의 실천적 기반을 확립했다.
다오잉의 높은 덕과 명성은 불교계를 넘어 당나라 황실에까지 이르렀다. 당나라 소종(昭宗)을 비롯한 당대의 지배층은 그의 도력을 깊이 존경하였고, 황실에서 직접 자의(紫衣)와 명예로운 칭호를 하사하며 국가적인 예우를 갖추었다. 902년 운거산에서 입적한 그에게 당나라 조정은 '홍각선사(弘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다오잉이 운거산에서 배출한 수많은 제자들은 당나라 멸망 이후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시기에 조동종이 크게 번성하고 명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의 철저한 선법은 훗날 일본의 조동종과 한국의 선불교 발전에도 중요한 사상적 자양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