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년

902년(효공왕 6년)은 신라가 통치력을 상실하고 한반도 전역이 후삼국 시대의 본격적인 혼란기로 접어든 시기였다. 신라 중앙 정부의 권위는 경주 인근 지역으로 축소되었으며, 지방에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호족들이 스스로 성주나 장군을 자처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이러한 정치적 분열은 백성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궁예가 건국한 후고구려(태봉)는 902년에 영토를 더욱 확장하며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궁예는 경기와 황해 지역의 호족들을 포섭하거나 무력으로 굴복시키며 세력을 키웠으며, 특히 청주 지역의 주민 1,000호를 철원으로 이주시키는 등 인구 이동을 통한 지배력 강화 정책을 펼쳤다. 이는 기존의 근거지였던 송악 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독재적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조치였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 또한 902년에 호남 지역의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견훤은 완산주(현재의 전주)를 도읍으로 삼아 행정 조직을 갖추고, 신라의 권위를 부정하며 백제 계승 의식을 고취했다. 후백제는 중국의 오월(吳越) 등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국제적 인정을 받으려 시도했으며, 이는 한반도 내 세력 균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던 당나라는 902년 당시 멸망 직전의 극심한 혼란 상태였다. 실권자 주전충(주황)이 황제 소종을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력을 장악했으며, 조정 내부에서는 환관들과 관료들 사이의 참혹한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당나라의 쇠락은 동아시아 전체의 책봉-조공 질서를 붕괴시켰고, 신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이 독자적인 외교와 전쟁을 수행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무타디드가 사망하고 알 무크타피가 즉위하였다. 알 무크타피는 제국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으나, 중앙정부의 통제력 약화와 지방 왕조들의 독립적인 행보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 서구 유럽 역시 카롤링거 제국의 해체 이후 봉건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노르만족과 마자르족의 침입으로 인한 극심한 사회적 불안을 겪고 있었다. 902년은 전 지구적으로 고대 국가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중세적 질서가 태동하던 격변의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