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바(Danaba)는 고대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페니키아 세쿤다(Phoenicia Secunda)에 위치했던 도시이자 기독교의 주교좌 소재지이다. 이 도시는 오늘날 시리아 영토 내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록에 언급될 정도로 지리적 존재감이 뚜렷했던 곳이다. 다나바는 다마스쿠스에서 팔미라로 이어지는 경로상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고대 동방 무역과 군사 이동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였다.
행정 구역상 다나바는 로마 제국의 동부 방어선인 리메스 아라비쿠스(Limes Arabicus)와 인접한 위치에 있었다. 로마 제국 시기부터 비잔티움 제국 초기까지 이 지역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구의 관할 하에 있는 주교좌 도시로서 종교적 위상을 갖추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다나바는 주변의 다른 도시들과 함께 페니키아 세쿤다 속주의 하부 행정 단위를 구성하며 중앙 정부의 관리를 받았다.
종교 역사적 측면에서 다나바는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활동 무대 중 하나였다.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 공의회 기록에는 다나바의 주교였던 에우로기우스(Eulogius)가 참석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이후 536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열린 종교 회의에도 다나바의 성직자들이 참여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당대 다나바가 기독교 신학 체계 내에서 일정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된다.
다나바의 정확한 현대적 위치에 대해서는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곳은 시리아의 하프르(Hafr) 지역이며, 일부 학자들은 사이드나야(Saidnaya) 인근을 지목하기도 한다. 하프르 유적지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비문과 건축 잔해들은 이 지역이 문헌 속의 다나바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며, 고대 도시의 구조와 배치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현재 다나바는 실제 행정 구역이나 거주지가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과거의 주교좌를 기념하기 위해 부여하는 명의 주교좌(Titular See)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이는 실제 교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역사적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명목상의 주교를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다나바는 고대 로마와 초기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상징적인 지명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