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굴(泥窟)은 과거 한반도 함경도 지역에 존재했던 지명으로,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진흙 구멍' 또는 '진흙 굴'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지명은 주로 함경북도 길주나 명천 일대의 특정 지역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척박한 북방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명칭으로 분석된다.
조선 시대의 관찬 사서인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 따르면, 니굴은 길주목에 속한 하위 행정 구역이나 주요 거점 중 하나로 등장한다. 당시 조정에서는 북방 영토를 개척하고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육진을 설치하는 등 국경 수비를 강화하였는데, 니굴은 이러한 국방 체계 내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거나 정착민들의 거주지로 기능하였다.
지형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니굴이라는 명칭은 해당 지역의 토질이 진흙이 많거나, 주민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땅을 깊게 파서 만든 토굴 형태의 집을 짓고 살았던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함경도 지역은 겨울이 길고 매우 추운 기후 특성을 가지고 있어, 전통적으로 보온 효율을 높이기 위한 건축 양식이 발달하였는데 니굴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생존 전략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니굴은 변방 지역의 관리와 주민 이주 정책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조선 초기 이래 시행된 사민 정책을 통해 남부 지방의 백성들이 북방으로 이주하면서, 니굴과 같은 거점들이 형성되고 점차 마을의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이는 한반도 북방 영토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착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오늘날 니굴이라는 지명은 현대 행정 구역 개편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다른 명칭으로 통합되었으나, 고지도나 문헌 속에 남아 과거 북방 개척의 역사와 선조들의 생활상을 전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받는다. 또한 한국어의 지명 어휘 연구 측면에서도 자연 지형과 거주 형태가 결합된 사례로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