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김도한, 1890년–1944년)은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그는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하였다. 미국 유학 시절, 그는 한인 커뮤니티와의 교류를 통해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김강은 191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한인 사회를 조직하고, 자유시민 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는 대한인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특히 그는 한인 이민국 연합을 결성해 미국 정부에 한국의 독립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그의 노력은 많은 동포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한국 독립을 위한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내는 데 기여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김강은 한국으로 귀국하여 의열단과 같은 무장 독립운동 단체와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일본 제국에 대한 저항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일제의 폭압에 맞서 싸우는 젊은이들을 조직하고, 무기 밀매와 폭탄 제조와 같은 급진적인 방법을 통해 무장 투쟁에 이바지하였다.
하지만 김강의 활동은 일본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그는 다시 해외로 도피하여 국제 연합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김강은 1944년 일제의 탄압 속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업적은 후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김강은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