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22년은 고대 세계사에서 제국들의 기틀이 마련되고 기존 질서가 재편되던 중요한 해였다. 동양에서는 진나라가 중국 통일을 눈앞에 둔 시기였다. 진왕 정의 장수 왕분은 연나라를 공격하여 요동으로 도망쳤던 연왕 희를 사로잡았으며, 이로써 연나라는 완전히 멸망했다. 또한 조나라의 유민들이 세웠던 대나라마저 정복하며 조나라의 명맥을 완전히 끊었다. 이로써 진나라는 제나라만을 남겨두게 되었으며, 이는 이듬해인 기원전 221년의 중국 최초 통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양의 로마 공화정에서는 북이탈리아의 갈리아 부족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영토를 확장했다. 로마의 집정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첼루스는 클라스티디움 전투에서 인수브레스족의 왕 비리도마루스를 직접 처단하며 로마 역사상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스폴리아 오피마(최고의 전리품)'를 획득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 승리를 통해 로마는 포강 유역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했으며, 메디올라눔(현 밀라노)을 점령하여 갈리아 키살피나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헬레니즘 세계의 핵심 국가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에서는 권력의 교체가 일어났다. 이집트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4세의 즉위는 왕조의 쇠퇴를 알리는 서막이기도 했다. 그는 정사보다는 유흥에 탐닉했으며, 유능한 관료들보다는 측근 세력인 소시비오스 등의 간신들에게 국정을 맡겨 왕권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스 본토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는 셀라시아 전투를 통해 스파르타의 개혁 시도가 좌절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3세 도손과 아카이아 동맹의 연합군은 스파르타의 왕 클레오메네스 3세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패배로 인해 클레오메네스 3세는 이집트로 망명했고, 스파르타가 시도했던 군사적 재건과 사회 개혁은 중단되었다. 마케도니아는 이 승리를 통해 그리스 내에서의 영향력을 다시금 확고히 했으며, 스파르타는 역사상 처음으로 외세에 의해 함락된 후 아카이아 동맹에 강제로 가입하게 되었다.
이처럼 기원전 222년은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가 등장하거나 기존의 세력 균형이 파괴되는 격변의 시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진나라에 의한 일극 체제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고, 지중해 세계에서는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북부로 세력을 확장하며 서지중해의 강자로 부상했다. 동시에 헬레니즘 세계의 전통적 강국들이 세대교체와 내부 갈등으로 인해 변화를 겪으면서, 고대 세계는 새로운 제국의 시대로 나아가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