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전

기왕전(棋王戰)은 한국 바둑계의 역사적인 주요 기전 중 하나로, 경향신문사가 주최하고 한국기원이 주관했던 전통 있는 바둑 대회이다. 1968년에 창설되어 수십 년간 한국 바둑의 발전과 함께해 온 이 대회는 국내 바둑 기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권위 있는 타이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초기 한국 바둑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중요한 무대였으며, 수많은 명승부를 남기며 바둑 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대회 초기에는 조남철 구단이 초대 우승을 차지하며 독보적인 기량을 과시했다. 이후 김인, 윤기현, 하찬석 등 당대 최고의 기사들이 우승컵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는 조훈현 구단이 장기간 타이틀을 보유하며 ‘조훈현 시대’를 견고히 구축했다. 기왕전은 기사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척도이자, 신예 기사들이 기성 기사들에게 도전하여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등용문 역할도 수행했다.

기왕전의 경기 방식은 대개 예선과 본선을 거쳐 최종 도전자를 선발한 뒤, 전기 우승자와 도전기가 펼쳐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대국 시간과 규칙은 한국기원의 규정을 따랐으며, 매회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관전기가 연재되어 바둑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당시에는 주요 기전마다 독특한 상징성과 명예가 주어졌는데, 기왕전 역시 그 위상이 높았기에 기사들 사이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창호 구단이 등장해 조훈현 구단의 독주를 막고 기왕전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었다. 이창호 구단은 기왕전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바둑의 세대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바둑계의 환경 변화와 후원사의 사정 등으로 인해 기왕전은 1995년 제26기 대회를 끝으로 중단되었다. 비록 현재는 개최되지 않으나, 기왕전은 한국 바둑사에서 명인전, 국수전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기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왕전의 폐지는 한국 바둑계에 큰 아쉬움을 남겼으나, 이 대회를 통해 배출된 기사들은 이후 세계 바둑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기왕전이 지녔던 권위와 역사성은 이후 창설된 다양한 바둑 기전들의 본보기가 되었으며, 한국 현대 바둑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에도 바둑 원로들과 팬들 사이에서 기왕전은 과거의 영광과 추억이 담긴 소중한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