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평근

권평근(權平根, 1900~1941)은 일제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춘암(春岩)이며 평안남도 용강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뒤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위해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담하여 무장 독립 전쟁의 선봉에 섰다.

1920년 권평근은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의 소대장으로서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는 백운평, 완루구, 어랑촌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청산리 대첩 이후 독립군 부대들이 일제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령 자유시로 이동할 때 함께 움직였으나, 1921년 자유시 참변이 발생하자 다시 만주로 돌아와 독립운동 조직의 재건에 힘썼다.

1925년에는 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들이 통합되어 조직된 신민부(新民府)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신민부의 중앙집행위원 및 보안사령관 등의 중책을 맡아 독립군의 군사 훈련과 동포 사회의 자치를 도모하였다. 특히 만주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독립운동의 재정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며 조직적인 항일 투쟁을 이어갔다.

이후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군 사령관 지청천의 휘하에서 참모로 활동하며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1933년경 중국 길림성 인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가혹한 고문과 오랜 투옥 생활을 견뎌냈으나, 끝내 건강이 악화되어 1941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권평근의 숭고한 독립 정신과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당시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그는 만주 무장 독립 투쟁사의 핵심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군사적 전술 능력뿐만 아니라 독립군 조직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탁월한 행정 능력을 겸비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