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린동과 중구 남대문로1가를 잇는 청계천의 다리이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 도성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였으며, 남대문에서 종루로 이어지는 도성의 중심 도로인 남대문로에 위치하여 통행량이 매우 많았다. 본래 명칭은 광통교(廣通橋)였으나, 통상적으로 광교라고 줄여서 불렀으며 현재의 교량 명칭도 이를 따르고 있다.
이 다리는 태종 10년(1410년)에 흙으로 된 다리가 홍수로 유실되자 돌다리로 개축하며 현재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건립 당시 태종 이방원은 정릉(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의 석물을 가져와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이는 정치적 갈등 관계에 있었던 신덕왕후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으로, 왕의 행차가 지나는 길목의 다리 밑에 능의 병풍석과 난간석을 배치하여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늘날 복원된 광통교의 교각에서는 정교한 구름무늬와 신장상 등의 석조 조각을 거꾸로 놓인 상태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광교는 민속놀이인 답교놀이(다리밟기)의 명소로 유명했다. 정월 대보름이면 한양의 남녀노소가 병을 예방하고 복을 빌기 위해 다리로 모여들었는데, 특히 광교는 폭이 넓고 견고하여 가장 인기가 많았다. 또한 주변에는 시전 상인들과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도성 내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광교 인근에는 그림을 파는 가게나 책방 등이 밀집해 있어 서민 문화가 번성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광교는 큰 변화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전차 선로가 놓이면서 다리의 일부가 훼손되었고, 1958년 청계천 복개 공사가 본격화되면서 다리 전체가 도로 아래에 매몰되었다. 이후 약 40년 동안 지하에 묻혀 있다가 2003년 시작된 청계천 복원 사업을 통해 다시 발굴되었다. 복원 과정에서 원래의 광통교는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원래 위치에서 상류 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으며, 교통 흐름을 처리하기 위해 현대적인 기술로 축조된 현재의 광교가 옛 자리에 들어섰다.
현재의 광교는 과거의 역사적 상징성과 현대 도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다리 주변은 청계천 산책로와 연결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며, 매년 열리는 서울 빛초롱 축제 등 다양한 행사의 주요 거점이 된다. 비록 실제 유물인 광통교와 위치는 분리되었으나, 광교라는 명칭은 여전히 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도심의 핵심 교량으로서 그 역사적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