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감영은 조선 시대 팔도 중 하나인 경상도를 관할하던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다. 감영은 관찰사가 상주하며 업무를 보던 관청으로, 현대의 도청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 조선 초기에는 경주, 상주, 성주 등 여러 지역을 이전하며 운영되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국방 및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601년(선조 34) 대구로 최종 이전되었다. 이후 1910년까지 약 310년 동안 대구는 경상도의 행정, 군사,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경상감영의 수장인 경상도 관찰사는 왕을 대신하여 지역의 행정, 사법, 군사권을 행사했다. 관찰사는 관내 수령들을 감독하고 민생을 살피며 조세 징수와 군역 부과 등 국가 정책을 집행했다. 특히 대구에 감영이 설치된 이후 경상도는 좌도와 우도로 나뉘어 통치되던 구조에서 벗어나 단일한 행정 체계 아래 통합적인 관리가 가능해졌다. 이는 영남 지역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했으며, 대구가 남부 지방의 거점 도시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경상감영의 주요 건물로는 관찰사가 공식적인 업무를 집행하던 선화당(宣化堂)과 관찰사의 사적 거처였던 징청각(澄清閣)이 대표적이다. 선화당은 '임금의 덕화를 선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정면 6칸, 측면 4칸 규모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웅장한 격식을 갖추고 있다. 징청각은 '맑은 마음으로 정사를 살핀다'는 뜻으로, 당시 관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이 외에도 정문인 관풍루와 여러 부속 건물이 존재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일부는 소실되거나 다른 장소로 이전되었다.
구한말 행정 개편에 따라 1896년 경상북도 관찰부가 설치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는 경상북도 청사로 사용되었다. 1966년 도청이 산격동으로 이전하면서 감영 터는 한때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으나, 1970년 중앙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이후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유적지 정비 사업을 통해 역사적 가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현재 선화당과 징청각은 보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경상감영은 조선 후기 지방 행정 시스템과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자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자산이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영남 지역의 정치적 권위와 문화적 전통이 집약된 공간이다. 현재는 도심 속의 역사 공원으로서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수문장 교대식 재현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조선 시대의 통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