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두정치(Triumvirate)는 세 명의 강력한 정치 지도자가 국가 권력을 분점하여 통치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라틴어 'triumviratus'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세 명의 남자'를 뜻하는 'tres viri'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 기존의 원로원 중심 통치 체제가 약화되고 개인의 군사적·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과정에서 출현했다. 이는 정식 관직이 아닌 정치적 야합에 의한 비공식적 동맹으로 시작되기도 하였으며,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공식화되어 국가 비상사태를 수습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제1차 삼두정치는 기원전 60년에 결성된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비밀 결사를 가리킨다. 당시 카이사르는 정치적 야망을, 폼페이우스는 퇴역 군인에 대한 토지 배분과 자신의 업적 승인을, 로마 최고의 부호였던 크라수스는 경제적 이권과 명예를 목적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일치시켰다. 이들은 막강한 군사력과 재력, 정치적 수완을 바탕으로 원로원의 통제력을 무력화하고 로마의 실권을 장악하며 각자의 목적을 달성해 나갔다.
하지만 제1차 삼두정치는 태생적으로 각자의 권력욕에 기반한 불안정한 결합이었다. 기원전 53년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원정 중 전사하면서 권력의 균형이 무너졌으며,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의 경쟁은 심화되었다. 결국 두 세력 사이의 내전이 발발하였고, 폼페이우스를 패배시킨 카이사르가 로마의 종신 독재관으로 등극하면서 제1차 삼두정치는 종결되었다. 이는 공화정의 전통적인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붕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제2차 삼두정치는 기원전 43년 카이사르 암살 이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가 결성한 정치 동맹이다. 제1차와 달리 이는 '티티우스 법'을 통해 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공식적인 국가 통치 기구였다. 이들은 카이사르를 암살한 공화파 세력을 처단하고 로마 세계를 분할하여 통치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의 주도권 다툼은 계속되었고, 레피두스가 먼저 실각하면서 권력은 두 사람의 대결 구도로 재편되었다.
삼두정치의 최종적인 종결은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하면서 이루어졌다. 이 승리를 통해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로 등극하였으며, 훗날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으며 사실상의 제정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삼두정치는 집단 지도 체제의 형식을 띠었으나, 본질적으로는 개별 권력자들의 야욕이 충돌하는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이는 로마가 도시 국가 체제인 공화제에서 거대 제국을 다스리는 군주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인 정치적 산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