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1은 자연수 체계에서 890보다 크고 892보다 작은 자연수이다. 수학적으로 이 수는 합성수이며, 소인수분해를 하면 3의 4제곱과 11의 곱($3^4 \times 11$)으로 나타낼 수 있다. 891의 약수는 1, 3, 9, 11, 27, 33, 81, 99, 297, 891로 총 10개이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 진약수들의 합은 561이며, 이는 원래의 수인 891보다 작으므로 부족수(Deficient number)에 해당한다.
역사적으로 서기 891년은 9세기의 끝자락에 위치한 평년이었다. 서유럽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제111대 교황으로 포르모소가 선출되어 즉위한 해이다. 또한, 동프랑크 왕국의 국왕 아르눌프가 루뱅 전투에서 바이킹 군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북방으로부터의 위협을 잠재우는 데 기여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중세 유럽의 세력 판도와 기독교 세계의 방어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양사에서 891년은 격변의 시대였다. 한반도의 통일 신라에서는 진성여왕 5년에 해당하는 해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지방 호족 세력이 발흥하던 시기였다. 특히 훗날 후백제를 세우는 견훤이 무진주(현재의 광주광역시)를 점령하며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기 시작한 배경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는 삼국 시대 이후 유지되던 통일 체제가 무너지고 후삼국 시대로 접어드는 전조 현상을 보여준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소종의 치세 아래 환관과 절도사들 간의 권력 투쟁이 극에 달해 국운이 쇠퇴하고 있었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였으며, 후지와라씨를 중심으로 한 귀족 정치가 공고해지는 가운데 지방 통제력의 변화가 감지되던 시점이다. 이처럼 891년은 전 세계적으로 고대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중세적 질서나 지역적 할거 주의가 나타나는 전환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891이라는 숫자는 특정한 분류 체계나 코드 번호 등으로 활용된다. 일부 국가의 도로망에서 노선 번호로 지정되기도 하며, 도서 분류나 통계 수치에서 고유한 식별자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수학적 특성과 역사적 사건의 기록을 통해 891은 단순한 수치를 넘어 9세기 말의 시대상과 수의 연산 구조를 설명하는 기초 자료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