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2년은 신라 경덕왕 1년이자, 당나라 현종의 천보 원년이며, 서양에서는 프랑크 왕국과 이슬람 제국이 각자의 통치 체제를 공고히 하거나 변화를 겪던 시기이다. 이 해는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장기적인 번영 뒤에 숨겨진 갈등이나 새로운 왕조의 태동을 준비하는 전환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신라에서는 제35대 국왕인 경덕왕이 즉위한 지 1년이 되는 해였다. 경덕왕은 통일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 중 하나로, 742년경에는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불교 문화를 숭상하는 정책을 본격화했다. 이 시기 신라는 당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했으며, 내정 면에서는 관직 명칭을 중국식으로 개편하는 등 유교적 정치 이념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당나라에서는 당 현종이 연호를 개원에서 천보로 바꾼 첫해이다. 이는 당나라의 황금기였던 '개원지치'가 마무리되고 점차 내부적인 혼란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한 시점이다. 현종은 이 무렵부터 양귀비를 총애하며 국정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지방 절도사들의 권한이 비대해졌다. 특히 742년에는 훗날 안사의 난을 일으키는 안록산이 평로절도사로 임명되어 변방의 군사력을 장악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서유럽의 프랑크 왕국에서는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들인 카를로만과 피핀 3세가 공동 궁재로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명목상의 군주인 메로빙거 왕조의 세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742년은 피핀 가문이 훗날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던 시기였다. 이 무렵 프랑크 왕국은 기독교를 포교하고 교회 조직을 정비하며 중세 유럽의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우마이야 왕조의 제10대 칼리프 히샴 이븐 압드 알말리크의 통치 후반기에 해당한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며 안정된 통치력을 보여주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아바스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저항이 수면 아래에서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몇 년 뒤 아바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으며, 742년은 이슬람 제국의 패권이 교체되기 직전의 긴장이 흐르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