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년은 신라 성덕왕 20년, 당나라 현종 개원 9년에 해당하는 해로, 동아시아와 유럽, 중동 지역에서 국가적 기틀을 다지거나 세력 판도가 바뀌는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고대 국가들의 중앙 집권 체제가 공고해지는 과정에서 영토 방어와 왕권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다각도로 시행되던 시기였다.
한반도의 신라는 북방의 말갈과 발해의 성장을 경계하며 국경 방어 체계를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성덕왕은 하슬라도(현재의 강원도 강릉 지역)의 장정 2천 명을 동원하여 북쪽 국경에 대규모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이는 신라가 삼국 통일 이후 영토의 안정을 꾀하고 외부 침입에 대비한 실질적인 방어선을 구축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중국 당나라는 현종의 치세 아래 '개원의 치'라고 불리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국가 재정이 안정되고 문화가 융성했으며, 조용조(租庸調) 제도의 정비와 균전제의 시행을 통해 사회 전반의 질서가 확립되었다. 일본에서는 겐쇼 천황이 통치하며 율령 체제의 안착을 도모했고, 전해인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천황 중심의 국가 의식을 강화하는 정책을 이어갔다.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접경 지역에서는 종교와 세력권의 운명을 가른 중대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베리아반도를 장악한 우마이야 왕조의 이슬람 군대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령인 아키텐 공국으로 진출했으나, 툴루즈 전투에서 아키텐의 오도 대공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전투는 이슬람 세력의 서유럽 진출을 일차적으로 저지한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이후 서유럽의 기독교 문명권을 수호하는 데 기여했다.
프랑크 왕국에서는 메로빙거 왕조의 국왕 힐페리히 2세가 사망하고 테우데리히 4세가 그 뒤를 이어 즉위했다. 그러나 당시 프랑크 왕국의 실권은 국왕이 아닌 궁재(宮宰) 칼 마르텔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며, 이는 훗날 카롤링거 왕조가 개창되는 발판이 되었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레오 3세가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내부 결속을 다지며 성상 파괴 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종교적 정책을 준비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