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년은 중세 전기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특히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 세력 간의 거대한 충돌이 일어난 해이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술라이만 이븐 압드 알 말리크는 대규모 함대와 육군을 동원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다. 이것이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성전의 시작이다. 비잔티움의 황제 레오 3세는 '그리스의 불'이라 불리는 인화성 무기와 강력한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이용해 방어에 나섰으며, 이 전투는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경계를 결정짓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슬람 세계 내부에서는 지도 체제의 변화가 일어났다. 콘스탄티노플 원정을 주도하던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술라이만이 사망하고, 그의 사촌인 우마르 2세가 새로운 칼리파로 즉위했다. 우마르 2세는 전임자들의 팽창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내치와 종교적 경건함을 강조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포위망이 성과 없이 막대한 인명과 자금 피해만 입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듬해 군대를 철수시키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의 군사적 확장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의 현종이 통치하던 시기로, 이른바 '개원의 치'라 불리는 전성기의 기틀이 닦이고 있었다. 신라에서는 성덕왕이 재위하며 국가의 안정과 불교 문화의 융성기를 이끌었다. 717년 당시 신라는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공고히 하며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특히 성덕왕 시기는 신라의 전성기 중 하나로 꼽히며, 유교 교육 기관인 국학을 정비하고 행정 체계를 강화하는 등 중앙집권적 통치력을 확보해 나갔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의 기틀이 확립되어 가던 시기였다. 겐쇼 천황이 재위 중이었으며, 실권자 후지와라노 후히토를 중심으로 법령 정비와 중앙 집권 체제 강화가 추진되었다. 717년에는 견당사(遣唐使)가 당나라로 파견되어 불교 경전과 다양한 지식을 일본으로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 이 시기 파견된 인물 중에는 아베노 나카마로와 기비노 마키비 같은 저명한 유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훗날 일본의 정치와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럽 서부에서는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를 마르텔이 권력을 공고히 하며 사실상의 통치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는 메로빙거 왕조의 내부 분쟁을 종식시키고 프랑크 왕국의 군사력을 재조직했다. 이는 훗날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군의 북상을 저지하고 카롤링거 왕조가 탄생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처럼 717년은 전 세계적으로 제국들의 경계가 재편되고 새로운 정치적 질서가 모색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