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년

678년은 서기 7세기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해로, 동아시아와 지중해 세계를 비롯한 주요 문명권에서 국가 체제의 정비와 세력 판도의 변화가 활발히 일어난 시기이다. 한반도에서는 신라 문무왕 18년이며, 당나라는 고종의 치세하에 있었다. 이 시기는 전쟁의 혼란이 잦아들고 각국이 내부적인 통치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시점이다.

신라는 삼국 통일 전쟁 이후 영토를 안정시키고 중앙집권적인 행정 체계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678년 정월, 신라는 현재의 강원도 원주 지역에 북원경(北原京)을 설치하여 지방 통제력을 높였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해상 업무와 선박 관리를 담당하는 관청인 선부(船府)를 창설하고 그 수장으로 영(令) 1명을 두었다. 이는 통일 이후 늘어난 해상 교역과 국방 수요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행정적 조치였다.

당나라는 대외적으로 토번(티베트)과의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678년 당나라 고종은 이경현(李敬玄)을 사령관으로 삼아 토번 정벌에 나섰으나, 청해 지역의 승풍령 전투에서 토번 군대에게 대패하였다. 이 전투의 결과로 당나라는 서역 제어권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토번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굳히게 되었다. 이는 당나라의 팽창 정책이 서방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서구권에서는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 세력인 우마이야 왕조 사이의 장기적인 충돌이 중대한 분기점을 맞이했다. 674년부터 시작된 이슬람 함대의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전이 678년에 비잔티움 제국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액체 가연성 무기인 '그리스의 불'을 사용하여 이슬람 함대를 격퇴하였으며, 이 승리를 통해 기독교 유럽 세계로의 이슬람 확장을 저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양측 사이에는 30년 기한의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일본에서는 덴무 천황의 재위 기간으로, 고대 국가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율령 정비가 계속되었다. 덴무 천황은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관위 제도와 신분 질서를 재편하는 데 힘썼다. 특히 678년을 전후하여 불교를 국가 통치의 이념적 도구로 활용하는 정책을 추진하며 국가 사찰의 건립과 승려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일본이 독자적인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