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

670은 자연수 체계에서 669보다 크고 671보다 작은 짝수이다. 수학적 특성으로는 소인수분해를 했을 때 2 × 5 × 67로 나타나며, 서로 다른 세 개의 소수의 곱으로 이루어진 수이므로 웨지 수(Sphenic number)에 해당한다. 약수는 1, 2, 5, 10, 67, 134, 335, 670으로 총 8개이며, 약수의 합은 1224이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 진약수의 합이 554로 본래의 수보다 작기 때문에 부족수(Deficient number)로 분류된다.

역사적으로 서기 670년은 동아시아 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해이다. 한반도에서는 나당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하였다. 신라는 고구려 유민들과 연합하여 당나라의 지배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군사 행동을 개시했다. 문무왕은 고구려 부흥 운동의 지도자였던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하고 금마저에 머물게 하며 당나라와의 전면전을 준비했다. 이는 신라가 삼국 통일 과정에서 당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적인 영토권을 확립하려 했던 중요한 시점이었다.

670년은 고구려 부흥 운동의 내부적 갈등과 변화가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다. 고구려 부흥군을 이끌던 검모잠이 안승을 받들어 고구려의 재건을 꾀했으나, 내부 분열 과정에서 안승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안승은 신라로 망명하여 보덕국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는 고구려 유민 세력이 신라의 영향권 아래로 흡수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시기 당나라는 신라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며 한반도 내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일본과 서역에서도 670년에는 중요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텐지 천황의 주도로 일본 최초의 전국적 호적 제도인 경술년적(庚戌年籍)이 작성되었다. 또한 일본의 대표적인 사찰인 호류지(法隆寺)가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이는 이후 호류지의 재건 공사와 양식 변화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의 근거가 된다. 중앙아시아 전선에서는 토번(티베트)이 대비천 전투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하며 서역의 제패권을 장악하여 당나라의 서쪽 국경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 670은 다양한 지표로 사용된다. 천문학에서는 안드로메다자리에 위치한 렌즈상 은하 NGC 670이 존재하며, 이는 1786년 윌리엄 허셜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디스플레이 기술 등에서 특정 장비의 모델명이나 규격 번호로 670이라는 수치가 자주 활용된다. 이처럼 670은 수학적 정의를 넘어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명칭 등 여러 맥락에서 의미를 지니는 숫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