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년은 7세기 중반의 해로, 동아시아 정세에서 신라와 당나라의 결속이 더욱 공고해지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간의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며,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나라와의 외교적 동맹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훗날 나당 연합군 결성과 삼국 통일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신라에서는 진덕여왕 재위 4년에 해당하며, 이해에 신라는 독자적인 연호인 '태화(太和)'를 폐지하고 당나라 고종의 연호인 '영휘(永徽)'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신라가 당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에 적극적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하며, 당나라와의 군사적, 정치적 협력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담긴 조치였다. 또한 진덕여왕은 당나라 고종에게 직접 지은 시인 '태평송(太平頌)'을 비단에 수놓아 보냄으로써 양국의 우호를 다졌다.
당나라는 고종 영휘 원년으로, 태종 이세민의 뒤를 이어 즉위한 고종이 제국을 통치하던 시기였다. 당나라는 태종 시기의 번영을 계승하며 대외 확장을 지속했고, 특히 한반도 문제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신라가 당의 연호를 채택하고 복식 제도를 수용한 것은 당나라가 동북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있어 신라를 핵심적인 동맹국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고토쿠 천황 치세에 연호를 '하쿠치(白雉)'로 개원하였다. 이는 아나토국(현재의 야마구치현)에서 흰 꿩을 헌상한 것을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 단행된 조치였다. 이 시기 일본은 다이카 개신을 통해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로 체제를 정비하고 있었으며, 견당사(遣唐使)를 파견하여 중국의 선진 문물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정통 칼리파 시대의 제3대 칼리파 우스만 이븐 아판의 통치 아래 영토 확장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슬람 군대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잔존 세력을 소탕하며 중앙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방면으로 세력을 넓혔다. 또한 이 시기에는 쿠란의 표준화 작업이 진행되어 이슬람 공동체의 종교적, 법적 통합을 꾀하는 등 세계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종교적,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