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년

633년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2년째 되는 해로, 한반도 내에서는 왕권의 안정과 민생 구율이 주요한 국정 과제였다. 선덕여왕은 즉위 직후부터 백성들의 삶을 돌보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며, 이해 정월에는 신라 전역의 주와 군에 사절을 보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고 과부, 홀아비, 고아 등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보살피게 했다. 또한 각 지역의 조세를 1년간 면제해줌으로써 민심을 수습하고 여왕의 통치 기반을 공고히 다지는 데 주력했다.

동아시아 전체적으로는 당나라 태종의 '정관의 치'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당나라는 돌궐을 복속시킨 이후 서역과의 교역로를 확보하며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외교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 내부에서는 신라와 백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으나, 대규모 전면전보다는 국경 지대에서의 소규모 분쟁과 외교적 탐색전이 주로 전개되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슬람 세력의 팽창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며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초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의 통치 아래 이슬람 군대는 아라비아 반도 내부의 반란을 진압한 뒤, 본격적인 대외 정복 전쟁에 나섰다. 이 시기 명장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이끄는 이슬람 군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상대로 울라이스 전투 등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진격했다.

오랜 기간 서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던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비잔티움 제국은 633년을 기점으로 신흥 세력인 아랍 군대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두 제국은 수십 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이미 쇠약해진 상태였으며, 이슬람 군대의 기동력과 종교적 결속력 앞에 요충지들을 차례로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는 고대 오리엔트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기존 질서가 붕괴하고 이슬람 문명권이 형성되는 거대한 전환점의 시작이었다.

유럽 지역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프랑크 왕국을 비롯한 여러 게르만 국가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나, 문화적·정치적으로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중동에서 시작된 이슬람의 팽창은 향후 수 세기 동안 유럽의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예고편과 같았다. 633년은 이처럼 동양의 안정적 통치와 서양 및 중동의 격변적 세력 교체가 교차하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