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년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당나라가 중국 통일을 사실상 확정한 해로 평가받는다. 당 고조 이연의 아들인 이세민(훗날의 태종)은 호뢰관 전투에서 두건덕의 하(夏)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뒤이어 낙양의 왕세충을 항복시켰다. 이 승리를 통해 당나라는 수나라 멸망 이후 지속된 군웅할거의 혼란기를 종식시키고 중원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였으며, 강력한 통일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신라 진평왕 43년에 해당하며, 신라가 당나라에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한 해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끊임없는 압박을 받고 있던 신라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당나라와의 결속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당시 신라 사절단은 당 고조로부터 비단과 화수병 등 귀중한 물품을 하사받았으며, 이는 훗날 나당 연맹으로 이어지는 외교적 협력의 시초가 되었다.
고구려 영류왕은 수나라와의 대규모 전쟁 이후 당나라와 일시적인 긴장 완화 상태를 유지하며 화친 정책을 펼쳤다. 621년 고구려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건국을 축하하였고, 당나라도 답례 사절을 보내 수나라 시기에 포로로 잡혔던 이들을 송환하는 등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이는 내부적으로 당나라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며 방어 체제를 정비하기 위한 고구려의 외교적 전략의 일환이었다.
백제 무왕 역시 이해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며 대외 관계를 강화했다. 백제는 신라를 고립시키기 위해 당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선점하려 노력했으며, 동시에 신라의 변경 지역을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영토 확장을 도모했다. 이처럼 621년의 한반도 삼국은 중국 대륙의 통일 세력인 당나라를 중심으로 각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내부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기하기 위해 화폐 제도를 개혁하고 무덕통보(武德通寶)를 처음으로 발행하였다. 이는 수나라 말기부터 문란해진 화폐 체계를 정비하여 중앙집권적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또한 균전제와 부병제의 정비를 통해 국가 운영의 기틀을 다졌으며, 이러한 내정 개혁은 당나라가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로 군림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