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년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수나라의 몰락과 당나라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대전환의 시기였다. 수나라 양제는 무리한 고구려 원정과 대운하 건설 등으로 국력을 소진하였으며, 이에 따른 민중의 불만과 전국적인 반란으로 인해 수나라의 통치 체제는 사실상 붕괴 상태에 직면했다. 이 시기 중국 대륙은 각지에서 일어난 군벌들이 패권을 다투는 극심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이 해 7월, 태원 유수였던 당국공 이연(훗날의 당 고조)은 아들 이세민과 함께 태원에서 거병하였다. 이연의 군대는 장안을 향해 진격하며 세력을 급격히 확장하였고, 곽읍 전투에서 수나라의 정예군을 격파하며 승기를 잡았다. 617년 11월, 이연은 수나라의 수도인 장안을 점령한 뒤 양제의 손자인 대왕 유를 황제(공제)로 옹립하고 자신은 대승상이 되어 실권을 장악했다. 이는 이듬해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공식적으로 개국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자의 영토 확장을 도모하며 대립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전후 복구와 국방 강화에 주력하던 시기였으며, 신라에서는 훗날 한국 불교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원효대사가 압량군(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신라와 백제는 국경 지대에서 빈번한 군사적 충돌을 벌였으며, 중국의 정세 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파급 효과를 예의주시하였다.
서남아시아와 유럽 방면에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비잔티움 제국의 전쟁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사산 왕조의 호스로 2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여 소아시아 전역을 장악했고, 페르시아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 맞은편인 칼케돈까지 진격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했다. 한편,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쿠라이시 부족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던 시기로, 하심 가문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보이콧이 선언되며 이슬람 초기 역사의 시련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종합적으로 617년은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력이 대두되는 격동의 해였다. 동양에서는 수·당 교체기를 통해 거대 제국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서양과 중동에서는 기존 강대국 간의 소모적인 전쟁 속에서 새로운 종교적·정치적 변화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다. 이 해에 일어난 사건들은 이후 수세기 동안 지속될 세계사의 흐름을 규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