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년은 동아시아 정세에서 수나라의 몰락이 가속화된 해였다. 수 양제는 북방의 돌궐을 견제하려 했으나, 오히려 시필 가한이 이끄는 돌궐군에게 안문(雁門)에서 포위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사건은 수나라의 군사적 권위가 완전히 추락했음을 보여주었으며, 중국 대륙 전역에서 농민 반란과 호족들의 독립 움직임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치열한 세력 다툼을 이어갔다.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대규모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요동의 방어선을 재정비하며 국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백제 무왕은 신라의 국경 지대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며 영토 확장을 꾀했고, 신라 진평왕은 이에 맞서 방어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 왕조와의 외교적 관계를 통해 고립을 탈피하려 노력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슬람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제1차 아비시니아 이주가 일어났다.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초기 무함마드 추종자들은 박해를 피해 홍해를 건너 기독교 국가였던 악숨 왕국(현재의 에티오피아)으로 망명했다. 이는 이슬람 공동체가 외부 세력의 보호를 받으며 종교적 자유를 찾으려 한 첫 번째 시도로 기록된다.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 간의 전쟁은 페르시아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전개되었다. 전년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사산 왕조의 군대는 615년에도 동로마 제국의 영토인 레반트와 소아시아 지역을 강하게 압박했다. 사산 왕조의 호스로 2세는 제국의 영토를 최대치로 확장하며 비잔티움 제국의 생존을 위협했다.
일본은 아스카 시대의 문화적, 정치적 기틀을 다지는 시기였다.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의 주도 아래 불교가 국가적인 종교로 장려되었으며, 유교적 통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관료 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또한 수나라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선진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며 고대 국가로서의 체제를 정비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