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년은 동아시아 정세에서 수나라의 패권이 강화되며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시기였다. 수 양제는 즉위 이듬해인 이 해에 대규모 토목 사업과 대외 팽창 정책을 본격화했다.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 한반도 삼국에도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각국은 수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재정립하거나 군사적 대응을 모색하며 자국의 안위를 도모했다.
수나라 내부적으로는 역사적인 토목 공사인 대운하 건설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양제는 낙양을 동도(東都)로 정하고 대규모 도성 건설을 추진하는 동시에, 황하와 회수를 잇는 통제거(通濟渠)를 착공했다. 이 공사는 남북의 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으나, 막대한 노동력 동원과 가혹한 세금 부과로 인해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반도에서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영토 분쟁과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백제 무왕은 605년 8월에 군사를 일으켜 신라의 가잠성(椵岑城)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당시 신라는 진평왕의 통치 아래 있었으며, 백제의 공세에 맞서 방어에 주력했으나 가잠성을 상실하며 국경 지대에서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갈등은 삼국 간의 주도권 다툼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본에서는 아스카 시대의 기틀을 다지는 정치적 개혁이 지속되었다.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의 지도 아래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로의 이행이 시도되었으며, 605년 무렵에는 불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아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한 수나라에 사절을 파견하는 등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서구권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의 포카스 황제가 통치하며 동방의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사비니아노 교황이 재임 중이었으나, 극심한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605년은 이처럼 동양과 서양 모두 대내외적인 변혁과 갈등이 공존하던 시기로, 이후 전개될 세계사의 흐름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