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년

598년(고구려 영양왕 9년, 백제 위덕왕 45년/혜왕 1년, 신라 진평왕 20년)은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 해이다. 중국을 재통일한 수나라와 동방의 강자였던 고구려 사이의 긴장이 폭발하며 제1차 고구려-수 전쟁이 발발한 시기이다. 수나라는 남북조 시대를 종식하고 중원을 장악한 뒤 주변국에 복속을 요구했으나, 고구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하려 하며 무력 충돌이 가시화되었다.

이 해 초, 고구려의 영양왕은 말갈 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수나라의 요서 지역을 선제공격했다. 이는 수나라의 팽창 정책에 대한 고구려의 강경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군사 행동이었다. 수나라는 중원의 통일 왕조로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이에 수 문제는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한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했다. 수 문제는 넷째 아들인 한왕 양량을 총사군원으로 삼아 육군과 수군을 합쳐 총 3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했다.

수나라의 원정군은 수륙 양면으로 고구려를 압박하고자 했다. 양량이 이끄는 육군은 임유관을 거쳐 요동으로 향했고, 주라후가 이끄는 수군은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직접 진격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수나라 군대는 행군 과정에서 극심한 난관에 봉착했다. 원정 시기가 장마철과 겹치면서 군량 보급이 끊겼고, 군영 내에 전염병이 돌면서 수많은 병사가 전투도 치르기 전에 목숨을 잃었다.

바다로 향했던 수군 역시 기상 악화로 인해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거센 풍랑을 만난 수나라 함선들은 서로 부딪쳐 파손되거나 침몰했으며, 고구려 수군의 저항까지 겹치면서 원정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기록에 따르면 수나라 원정군 중 살아서 돌아간 자는 전체의 10~20%에 불과할 정도로 패배의 규모가 컸다. 고구려는 강력한 방어 체계와 자연환경을 적절히 활용하여 통일 제국 수나라의 첫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전쟁 직후 고구려는 사신을 보내 수나라에 화해를 청했고, 원정 실패로 큰 타격을 입은 수 문제 역시 이를 받아들여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의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훗날 수 양제 시기에 재개될 대규모 전쟁의 서막이 되었다. 한편, 백제에서는 위덕왕이 서거하고 혜왕이 즉위하며 왕권 교체가 일어나는 등 한반도 내부에서도 권력 구조의 변화가 나타난 해였다.